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찰스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 운운은 국내 번역서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 다윈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제목이다.

종교 관련

젋었을 때의 다윈은 근본주의 기독교도였다. 사실 그는 비글호에 승선하기 전에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었다:

이 두 해 동안(1836-10-?? 부터 1839-01-?? 까지. 항해를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결혼하기 까지의 시기) 나는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글호 항해를 하는 동안 나는 꽤나 정통 지지 쪽이어서, 특정 도덕문제에 대한 반박 불가능한 권위로서 성경을 인용하는 바람에 일부 사관들(그들도 정통파였지만)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을 정도였다.

서서히 자라나는 의문들:

그런데 이 무렵 나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명백히 잘못된 세계 역사, 바벨 탑 이야기, 무지개 언약, 복수심 가득한 폭군의 감정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리는 것 등을 볼 때, 구약은 힌두교 경전이나 다른 미개인들의 신앙과 마찬가지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에 그런 의문이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더니 사라질 줄을 몰랐다. … 하지만 내 신앙을 결코 쉽게 포기하려 하지는 않았다. 폼페이 같은 곳에서 필사본 고문서라도 발견되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를 놀라운 방법으로 확증해주는 일이 있어났으면 하는 백일몽을 꾸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신이 서서히 내게 스며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고, 그 이후로는 단 1초도 내 결론이 옳다는 생각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떻게 기독교를 사실로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만일 성경을 그런 식으로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불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져야 하는데, 내 아버지와 형과 가장 친한 친구들 대부분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야말로 저주받을 만한 교리가 아닌가!

다윈은 자연선택 이론 덕분에 페일리의 설계 논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당대의 목적론적 진화 이론과 달리 목적을 가진 지능적인 설계자 없이도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메커니즘이다:

William Paley(시계공 논증으로 유명한 그 페일리. 시계공 논증에 대한 Richard Dawkins의 체계적인 반박은 The blind watchmaker이라는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가 제기한 바와 같은 자연설계에 대한 주장은 나도 한때 최종 결론으로 여긴 적이 있지만, 자연선택 법칙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시들해지고 말았다.

고통과 도덕성에 대하여:

세상 살기가 고생스럽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경우 고생을 느껴야만 도덕심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인간의 숫자는 다른 모든 의식 있는 존재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은 아무런 도덕적 향상 없이도 대단한 고통을 겪고 있다. 우주를 창조할 수 있었던 하느님처럼 강력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존재는 우리의 제한적인 생각으로는 전지전능하지만, 하느님의 자비심이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한없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하등동물들이 겪은 고통은 무엇 때문이었단 말인가?

어린 아이에게 믿음을 주입하는 것에 대하여:

어린아이의 마음에 신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심어진 믿음은 아직 다 발달하지 않은 뇌에 너무나 강하고 유전적이기까지 한 영향을 미쳐서 신에 대한 그런 믿음을 떨쳐버리는 일은 원숭이가 뱀에 대해 갖고 있는 본능적인 공포와 증오를 떨쳐내기가 힘든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다음은 종의 기원에서 종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인용한 글이다. 초판본에는 없다가 중간에 몇 번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추가된 내용들이 꽤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50년 전에 쓰여진 글인데, 현대의 창조과학자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다:

왜 이 책에서 말한 견해가 사람들의 종교감정을 뒤흔들어 놓았는지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인상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지난날 인간에 의해 이룩된 최대의 발견, 즉 중력의 법칙도 역시 라이프니츠에 의해 “자연종교에 의해서 계시종교를 멸망시키는 것”으로서 공격당한 일을 상기하면 된다. 유명한 저술가이며, 성직자인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스스로 발달하여 다른 유용한 생물이 되는 능력을 가진 소수의 본래의 종류를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것은 신의 율법의 작용으로 생긴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신이 새로운 창조행위를 했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것이 신에 대한 고귀한 개념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I see no good reasons why the views given in this volume should shock the religious feelings of any one. It is satisfactory, as showing how transient such impressions are, to remember that the greatest discovery ever made by man, namely, the law of the attraction of gravity, was also attacked by Leibnitz, “as subversive of natural, and inferentially of revealed, religion.” A celebrated author and divine has written to me that “he has gradually learned to see that it is just as noble a conception of the Deity to believe that He created a few original forms capable of self-development into other and needful forms, as to believe that He required a fresh act of creation to supply the voids caused by the action of His laws.”

우리의 무지를 창조의 계획이니 설계의 일치니 하는 표현법으로 감추고, 그저 사실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설명이 된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상당한 수의 사실을 설명하는 것보다 설명할 수 없는 난제 쪽을 중하게 보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 자는 나의 학설을 거부할 것이 틀림없다. 융통성이 있고, 이미 종의 불변성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 소수의 박물학자는 이 저서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갖고 장래에 - 문제를 편견없이 양면에서 볼 수 있는 젊은 박물학자들에게 - 기대를 갖는다. 종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된 자는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양심적으로 표명하는 것으로 충분히 공헌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이 주제 위에 덮치고 있는 편견의 무거운 짐을 제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It is so easy to hide our ignorance under such expressions as the “plan of creation,” “unity of design,” etc., and to think that we give an explanation when we only restate a fact. Any one whose disposition leads him to attach more weight to unexplained difficulties than to the explanation of a certain number of facts will certainly reject the theory. A few naturalists, endowed with much flexibility of mind, and who have already begun to doubt the immutability of species, may be influenced by this volume; but I look with confidence to the future, to young and rising naturalists, who will be able to view both sides of the question with impartiality. Whoever is led to believe that species are mutable will do good service by conscientiously expressing his conviction; for thus only can the load of prejudice by which this subject is overwhelmed be removed.

생명은 그 여러가지 능력과 함께 맨 처음에 조물주에 의해 소수의 것, 혹은 단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는 이 견해, 그리고 이 혹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에 그토록 단순한 발단에서 극히 아름답고 이와 같이 가장 경탄할만한 무한의 형태가 생겨나고 또한 진화되고 있다는 이 견해 속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종의 기원 저술 과정

이번에는 “종의 기원”에 대한 다윈의 회고.

근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라이엘,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이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

영국에 돌아온 뒤 라이엘의 지질학 모범을 따르며, 길들인 것이든 자연상태든 동식물의 변이에 담긴 모든 사실을 수집한다면 이 주제 전체를 해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내 기록을 펼쳐본 것은 1837년이었다.

나는 베이컨의 귀납원리에 따라 아무런 이론 없이 방대한 사실들을 수집했다. 특히 길들인 생물에 관해 서면 질문을 하거나, 노련한 사육사나 원예사와 직접 대화를 하거나,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수집했다. 일지나 회보 등을 망라하여 내가 읽고 요약한 모든 책의 목록을 보다보면 스스로 한 일에 놀라게 되기도 한다.

핵심 원리인 “선택”에 대한 깨달음:

내가 곧 발견한 사실은 사람이 유용한 동물이나 식물 종을 만들어낼 때의 핵심원리는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연상태에 살고 있는 유기체에게 선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내게 한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다윈은 그 후 맬서스의 인구론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사실, 경제학과 진화론 사이에는 수많은 공통점이 있다:

1838년 10월, 체계적으로 질문을 시작한 지 15개월이 지나서 나는 우연히 맬서스의 인구론을 재미삼아 읽었다. 동식물의 습성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덕에 생존투쟁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컸던지, 이런 상황에서라면 유리한 변이는 제대로 보존될 것이며 불리한 경우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작업에 쓸 만한 이론을 하나 얻게 된 셈이다.

변이와 선택을 통한 진화 메커니즘에 대해 다윈과는 독립적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웰래스에 대해. 다윈은 라이엘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이론을 월레스와 공동 발표하게 된다. 자서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미적지근하게 쓰고 있지만, 공동 발표 뒤에 얽힌 재미있는 뒷담화 거리가 많이 있다:

1856년 초 라이엘은 내 견해를 개략적으로 써보라고 권했다. 나는 곧바로 착수하여 나중에 “종의 기원”에 서 다룬 내용의 서너 배에 해당하는 주제를 정리했다. 그것은 내가 모은 자료를 대략 요약한 것으로, 이 가운데 제대로 파악한 부분은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마 내 계획이 이미 알려져서 1858년 여름 인도네시아의 말레이 제도에 있던 월레스씨 는 “원형에서 일정하지 않게 벗어나려는 변종의 경향에 대하여”라는 소논문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 소논문은 내 이론과 정확하게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월리스 씨는 내가 그 글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라에엘에게 보내어 읽어보게 해달라는 뜻을 전해왔다.

우리(Darwin과 Wallace)의 공동 발표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해서, 그 글에 대해 활자화된 평을 해준 사람은 더블린의 Haughton 교수 단 한 명 뿐이었다. 그의 평은 발표된 내용 중 새로운 부분은 모두 틀렸으며 사실인 것은 모두 오래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이는 새로운 견해를 발표할 때는 일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상당한 분량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였다.

드디어 종의 기원 집필:

1858년 9월에 나는 라이엘과 후커의 권고로 종의 돌연변이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1856년에 훨씬 광범위하게 요약했던 원고를 다시 정리하고 줄여서 책을 한 권 냈다. 여기에만 13개월 열흘 간의 고된 노동이 들어갔다. 이 책이 바로 1859년 11월에 On the origin of species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다. 나중 판본에 상당 부분을 보충하고 수정하긴 했으나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내 인생의 대표작이다…. 히브리어로도 논문이 하나 나와서 내 이론이 구약에 이미 나와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종의 기원”의 성공으로 “이 주제가 만방에 알려졌다” 또는 “이제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따금 꽤 많은 자연학자들의 반응을 알아보았으나 종의 영구성을 의심하는 듯한 사람을 만나본 일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라이엘과 후커만 해도 내 이야기를 흥미있게 듣지만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력인사들에게 내가 말하는 자연선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보려고 한 적도 한두 번 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자서전에서 자주 인용되는 라이엘은 다윈과 특히나 각별한 사이였다고:

결혼을 전후해서 나는 라이엘을 가장 많이 만났다. 내가 보기에 그의 특징은 명징함과 신중함, 건전한 판단력과 풍부한 독창성이었다. 지질학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그는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이 전체 사례를 완전히 파악하여 내가 전에 보던 시각보다 더 큰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 견해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모든 반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곤 했으며, 그렇게 충분히 따져 본 다음에도 한동안 마음을 놓지 않고 다시 따져보곤 했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 진심어린 공감을 해준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윈의 자연선택을 완전히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정직성은 인상적일 정도였다. 그것은 그가 라마르크의 견해에 반기를 들어 명성을 얻은 사람이면서도 나이가 든 다음에 유전 이론으로 전향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라이엘은 유기체의 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가 거의 70이 다 되어서 입장을 바꾸게 된다. 다윈은 진화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을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라이엘은 자연선택의 중요성에 대한 다윈의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유기체의 진화를 인정했다는 것을 결국 자신이 오랜 시간 반대해온 라마르크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뜻이 된다). 그는 오래 전에 그의 견해에 반대하는 옛 지질학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자신에게 해주었다는 말을 다시 내게 떠올려주었다. “과학자들은 60세만 되면 모두 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나이만 넘어서면 모두 새로운 학설에 반대를 하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계속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유머 감각도 뛰어나서 재미있는 일화를 자주 들려주었다.

라이엘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지만, 이 글들로 보아서는 훌륭한 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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